달비골 입구 약수터에서 본 눈덮힌 앞산의 모습, 신기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듯이 보인다 ⓒ 앞산꼭지 

나무 위 농성장, 우리들의 ‘집’에 오르며


대적전 앞에서


윤재철


돌계단 내겨가는 숲속 길

아득히 굽어져 내려가는

저 아래 어디쯤

내 집은 있을까


천 년도 넘게 고쳐쌓고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갔을

이 길

이 길 끝 어디쯤

내 집은 있을까


아득하여라

그리웁구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저 건너 산허리에

노을빛은 붉은데

숲길은 벌써 어두워지고

집은 어디에 있는가



  윤재철 시인의 유명한 시집 《생은 아름다울지라도》에 나오는, 이 시집의 서시격인 시입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시종일관 집의 의미를 묻고, 자신의 집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집이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자아가 정체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이 시집은 그런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오늘 문득 이 시집이 생각이 났고, 그 시집의 이 시가 또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 또한 오늘 그 ‘집’을 찾아 길을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의 온 정체성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그 집을 저는 오늘 찾아나서는 길입니다.

그 집은 다름 아니라 대구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의 농성장, '우리들의 집’입니다.


  대구의 유명한 산 ‘앞산’, 대구 도심에 바로 인접해 있는 산으로, 날마다 이 산에서 불어오는 살아있는 공기를 마시며 사는 대구시민들이기에 우리들에겐 대구의 ‘어머니산’으로 불리워지는 산 앞산.


  이 앞산에 수많은 대구시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금 터널을 뚫는 공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행해지는 이 거대한 토목공사는 제2의 범안로로 대구시민들의 통행료와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것이 뻔한 잘못된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대구시에 맞서 “앞산터널 아니오”를 외치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 약칭으로 ‘앞산꼭지’라고 합니다.


  이 앞산터널공사에 우려를 표하는 많은 대구시민들과 우리들 앞산꼭지의 의사를 무시하고 급기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작년 6월 이후 저 대구시의 말대로 ‘합법적’으로 벌이는 공사를 합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었던 무기력한 우리 앞산꼭지 앞에, 우리들의 5년여에 걸친 끈질긴 ‘저항’에 급기야 앞산의 조상들이 감동해 우리 앞에 그 모습들을 나타낸 것입니다.

바로 그분들이 사신 곳으로 우리들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이 앞산을 기반으로 살아간 대구의 아주 옛 선조인 신석기인들의 ‘집’인 '巖陰[바위그늘] 유적'입니다.

    

  이 집들의 발견으로 앞산꼭지들은 얼마나 고무되었는지 모릅니다. 대구의 역사를 5,000년에서 10,000년은 거뜬히 끌어올릴 수 있는 귀한 유산의 발견으로 어쩌면 공사 자체가 중단이 되고 이곳에 대규모 유적지가 세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접한 문화재청의 2008년 10월 29일자의 긴급한 공사 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대구시는 무지막지한 태영건설을 앞세워 그 이름도 무색하게 상급기관의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지금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대구시가 스스로 불법공사를 지시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각 현재, 한 대구시민의 표현을 빌리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인 앞산 ‘용두골숲'은 자취을 감추었고, 대규모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겪분한 앞산꼭지는, 그러나 저 거대한 골리앗에 맞선 작은 ‘난장이’에 불과한 우리들이 벌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최후의 항의 수단, 최후의 항전의 표시로 택한 것이 ‘나무 위 농성’입니다. 나무 위에 ‘집’(집이래야 텐트 하나지만)을 지어놓고 이곳에 살면서 이 무지몽매한 공사로 인해 먼저 간 생명들의 넋을 위로하고, 또한 이웃 용두골 형제들의 신음소리를 목격한 채 지금 벌목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상수리나무들을 위무(慰撫)하기 위해서 이 '나무 위의 집'에 올라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매일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 부끄러운 탐욕의 행위에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로 29일째입니다.

대구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숲의 "나무 위의 농성장" ⓒ 한겨레 김태형 

"나무 위의 농성장"에서 농성 중인 분에게 필요한 물품을 올리고 있는 한 '앞산꼭지' ⓒ 한겨레 김태형 

나무 위 농성장 주변에 시민들의 바람과 염원을 담아 소지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앞산꼭지   

나무 위 농성장, 우리들의 집에 기쁜 마음으로 오르겠습니다
  
이 나무 위의 집에서 시작한 이 '시적인 저항'의 첫 농성자로 지난 12월 14일 '이웃교회' 오규섭 목사님이 올라가셔서 일주일간 금식 기도를 하시고 내려오셨고, 지금은 두번째 농성자인 윤희용 앞산꼭지가 그 뒤를 이어 3주째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상으로부터 18미터의 고공에서 얇은 텐트에 의지한 채 칼바람을 맞으며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노고에 同志로서 찬사를 바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거룩한 바보’들의 시적 투쟁의 세번째 농성자로 미약한 제가 이 나무 위의 집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참 의미가 남다른 시간입니다. 저는 지난 한해 이 앞산이 준 너무나 큰 선물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선물들입니다. 


  이 앞산을 지키기 위해서 우선 이 산을 잘 알아야 한다면서 시작한 산행은 우선 제 건강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심신이 지쳐서 심각한 상황에 있던 저를 이 앞산이 구원해주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더욱 이 앞산과 깊이 사귀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앞산의 구석구석을 알아가게 되고 급기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대구에 오랫동안 살면서도 이 앞산을 오르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일찍부터 만들어진 앞산 케이블카 때문에 어린시절 앞산은 의례히 저 물건을 타고 올라야 하는 곳으로 알았고(대구시는 이것도 심각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커서는 등산이라 하기엔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산인지라 감히(?) 오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많은 대구시민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만, 암튼 저에게 앞산을 그런 작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왜 이런 산을 이제껏 나는 오르지 않았을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을 두고 왜 비싼 돈 들여 나는 다른 산들을 찾았던 것일까 하며 반성이 될 지경입니다. 발아래 행복을 잘 못 보듯이, 가까운 곳의 보석이 제게는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보석을 이제야 제대로 발견한 것입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깨달음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앞산이 내 발 밑의 숨은 보석이듯이 내가 사는 이곳 대구도 그런 곳이 아닐까? 그 순간 그동안 내가 비방만 했지(이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배경 탓으로 극보수의 도시,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가 너무나 싫었기에) 그 참 모습을 알려고 생각지 않았던 이 대구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 안의 대구사람들도 새롭게 보이고 말입니다. 저에게는 비로소 ‘우리 고장’ 대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새로운 눈으로 대구를 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구경꾼의 입장에서 참 주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매사를 주인 된 입장에서 보니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사랑의 본질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에게는 앞산터널반대 투쟁이 그래서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대구를 사랑하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대구의 상징과도 같은 산을 뚫는다는 것은 대구의 심장을 뚫는 것인데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앞산꼭지 대부분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나무 위의, 우리 앞산꼭지들이 지어주신 집에 기쁜 마음으로 오릅니다. 올라서 다시 한번 이 앞산이 제게 주는 사랑을 확인하고, 이 앞산이 처한 위기를 진정 친구의 입장에서 함께하고자 합니다. 친구의 의리로서, 그리고 자식 된 자의 심정처럼 에미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저는 올라가겠습니다.


  올라가서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인 이 산의 나무와 돌과 흙과 물과 다람쥐와 토끼와 고라니와 멧돼지에게, 숲의 정령들에게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앞산을 지켜 달라고, 우리 인간들의 탐욕을 용서하고 그리고 하루 빨리 우리 인간들이 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참회하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하겠습니다.


  앞산꼭지 여러분, 우리들은 이 앞산과 연결이 된 존재입니다. 우리들은 이 앞산이란 거대한 나무의 한 가느다란 뿌리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비록 꽉 막힌 메마른 땅이지만 샘을 찾아 열심히 열심히 뚫고 들어갈 때 비로소 이 거대한 나무는 소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왔듯이 조금 더 대구시민들의 품을 찾아 뿌리를 내려야 하겠습니다. 그 길에 미약한 힘이지만 동참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앞산이 제게 준 선물로 무엇보다도 기쁜 것이 바로 이 앞산으로 연결이 된 '우리'라는 울타리, 우리 앞산꼭지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무척 행운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인 앞산꼭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 이 나무 위의 집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 애써주신 많은 앞산꼭지들의 정성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성이자 우리들의 집인 이곳에 오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9년 1월 11일 앞산꼭지 정수근
 

앞산의 겨울, 상수리나무숲 뒤로 눈 덮힌 앞산의 모습이 보인다. 신비한 기운을 머금고.... ⓒ 앞산꼭지

앞산 달비골 농성장 안에 앞산꼭지의 염원을 담은 붓글씨 현수막 "앞산은 살고 싶다" ⓒ 앞산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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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3동 | 달비골 상수리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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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앞산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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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외숙 2009.01.1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산은 살고 싶다. 이 외침이 시청까지 태영까지 전해져서 그들의 마음에 물결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립니다.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30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대한 개발주의자들과 맞서 나무 위에서 외롭게 보내신
    앞산꼭지님의 뜨거운 환경사랑에 감동했습니다.

    • Favicon of https://apsan.tistory.com BlogIcon 앞산꼭지 2009.08.30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결국은 지켜내지도 못했는걸요.
      참으로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이런 야만의 역사가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일입니다.

      방문과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